[에디터의 한마디] 현대 야구에서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은 선수를 평가하는 성경과도 같습니다. WAR이 5.0이면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고, 0.0이면 마이너리그에서 갓 올라온 선수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하죠. 그렇다면 WAR이 '마이너스(-)'인 선수들은 어떨까요? 이론적으로는 팀에 해를 끼치는 존재여야 하지만, 현장의 감독들은 여전히 그들을 중요한 순간에 마운드에 올리고 타석에 세웁니다. 왜 데이터는 그들을 '마이너스'라 부르는데, 현장은 그들을 '필요한 자원'이라 부를까요? 오늘은 차가운 통계의 사각지대에 가려진 벤치 멤버들의 뜨거운 가치를 해부해 보겠습니다.

1. WAR의 함정과 오해: 0 미만이 의미하는 진짜 수치
WAR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그 선수가 차라리 마이너리그의 '대체 선수'보다 기여도가 낮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통계적 함정이 있습니다. WAR은 기본적으로 누적 지표(Cumulative Stat)입니다. 기회가 적은 백업 포수나 대수비 요원은 공격에서 한두 번의 실수만으로도 지표가 급격히 깎일 수 있는 구조적 불리함을 안고 있습니다.
또한 WAR 산정 방식은 포지션별 보정치를 두지만, 경기 후반 수비 1이닝의 절실함이나 대주자의 베이스 러닝 한 번이 가져오는 '경기 흐름의 변화'를 완벽하게 잡아내지 못합니다. 즉, 마이너스 WAR은 그 선수의 능력이 '0' 이하라는 사형 선고가 아니라, "통계적으로 측정 가능한 영역에서 평균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제한적인 기록일 뿐입니다. 야구는 숫자로 하는 게임이지만, 숫자가 담지 못하는 '틈새'를 메우는 선수들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2. 숫자가 놓치는 '무형의 자산': 클럽하우스와 리더십
메이저리그(MLB)와 KBO의 수많은 명장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데이터는 클럽하우스의 공기를 읽지 못한다." WAR이 마이너스인 베테랑 선수가 팀에 남아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리더십과 멘토링입니다. 연패에 빠진 팀의 분위기를 추스르고, 흔들리는 신인 선수의 멘탈을 잡아주는 역할은 그 어떤 첨단 지표로도 환산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클럽하우스 가이(Clubhouse Guy)'라 불리는 이들은 팀의 응집력을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접착제입니다. 만약 WAR 5.0의 스타 플레이어가 개인주의적인 태도로 팀워크를 해친다면, 그 손실은 WAR -0.5인 베테랑의 헌신적인 희생보다 팀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데이터 야구의 시대에도 선수는 결국 '사람'이며,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시너지는 마이너스 수치 뒤에 숨겨진 진정한 가치입니다.
3. 전략적 유연성: 로스터의 '보험'이자 '특수 목적 카드'
마이너스 WAR을 기록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들은 감독에게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제공합니다.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수비 전문 요원은 주전 선수의 체력 안배와 부상 발생 시 팀 무너짐을 막는 강력한 보험입니다.
- 상황 특화(Platoon) 전략: 전체 성적은 낮아도 특정 구질이나 좌/우 투수에게 강점이 있는 선수는 결정적인 순간 '대타'로서 높은 효율을 냅니다.
- 수비 강화(Defensive Substitution): 1점 차 승부에서 9회초 수비 강화는 승률을 비약적으로 높이지만, 해당 선수의 시즌 WAR에는 거의 반영되지 않습니다.
- 체력 분산의 기여: 주전 유격수가 144경기를 모두 뛰면 부상 위험이 급증합니다. 마이너스 WAR 백업이 10경기를 대신 뛰어줌으로써 주전 선수의 '시즌 전체 WAR'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주연'을 빛나게 하기 위해 자신의 기록을 깎아 먹으며 '조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언성 히어로(Unsung Hero)들입니다.
4. 미래를 위한 투자: 성장의 통행료
특히 유망주들의 경우, 1군 무대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마이너스 WAR을 기록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기량 미달이 아니라 '성장의 통행료'로 이해해야 합니다. 실전 경험을 통해 수 싸움을 익히고 실패를 경험하는 과정은 차후 WAR 3.0 이상의 선수가 되기 위한 필수 단계입니다.
구단이 마이너스 지표를 보이는 신예를 꾸준히 기용하는 것은 현재의 승리를 일부 희생하더라도 미래의 핵심 자산을 키우겠다는 전략적 판단입니다. 따라서 팬들은 현재의 마이너스 수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그 선수가 경기 속에서 보여주는 '성장의 편린'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 90%의 데이터와 10%의 진심이 만나는 곳
WAR은 야구를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나침반이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90%의 승리 기여도가 데이터로 설명된다면, 나머지 10%는 수치화되지 않는 헌신, 리더십, 그리고 전략적 희생으로 채워집니다. 마이너스 WAR 선수들은 그 10%의 영역에서 묵묵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야구 중계창의 낮은 수치를 보고 실망하기 전에, 그 선수가 팀의 연패를 끊기 위해 더그아웃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주전의 휴식을 위해 얼마나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야구는 완벽한 기계들의 조합이 아니라, 부족함을 서로 채워주는 사람들의 드라마입니다. 마이너스 수치 속에 숨겨진 플러스의 진실을 발견할 때, 비로소 야구라는 스포츠의 진정한 깊이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