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한마디] 야구장 높은 곳, 작은 방에서 경기를 응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관중의 환호도, 심판의 콜 사인도 멈춘 순간, 이들의 '펜 끝'에서 한 선수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바로 공식 기록원입니다. 150km의 강속구보다 무거운 것은 기록원이 써 내려가는 한 글자, 'H(안타)'인가 'E(실책)'인가의 차이입니다. 오늘은 야구 기록의 신성함과 그 이면에 숨겨진 주관성의 딜레마를 심층 해부해 보겠습니다.

1. 🔍 기록의 연금술: '평범한 수비'라는 모호한 성역
야구 규칙 제9.00조는 기록원의 권한을 명시합니다. 하지만 규칙서 어디에도 '평범함'에 대한 물리적 수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실책(Error)의 철학적 정의: 규칙상 실책은 "평범한 노력(Ordinary effort)으로 처리할 수 있는 플레이를 놓쳤을 때" 발생합니다. 문제는 이 '평범함'이 기록원의 주관적 경험에 의존한다는 점입니다. 20대 유격수의 수비 범위와 30대 후반 베테랑의 수비 범위는 다릅니다. 기록원은 수비수의 신체적 능력, 잔디의 상태, 조명의 밝기까지 고려하여 '그 상황에서의 평범함'을 정의해야 합니다.
- 안타(Hit)와 투수의 면죄부: 타구가 수비수 글러브를 맞고 굴절되었을 때, 기록원이 이를 안타로 판정하면 투수는 '자책점(Earned Run)'의 위기에 처합니다. 하지만 실책으로 판정하면, 그 이후 발생하는 모든 실점은 투수의 방어율(ERA)에 산입되지 않는 '비자책점'이 됩니다. 즉, 기록원의 판단 하나가 투수에게는 '면죄부'를, 타자에게는 '박탈감'을 줄 수 있는 구조입니다.
2. 💰 숫자의 자본주의: 연봉 협상 테이블 위의 '기록원 판정'
프로 야구에서 기록은 곧 '돈'입니다. 기록원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에이전트와 구단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 ERA 0.01의 경제학: 투수의 평균자책점(ERA)이 3.00이냐 2.99냐는 연봉 협상에서 수억 원의 가치를 가릅니다. 기록원이 안타성 타구를 실책으로 바꿔줌으로써 투수의 ERA가 낮게 유지된다면, 이는 투수의 시장 가치를 부풀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반대로 타율 3할을 노리는 타자에게 실책 판정은 치명적인 '기회비용'의 상실입니다.
- 명예의 전당과 '기록의 순수성': 통산 3,000안타나 200승 같은 대기록은 수십 년간 쌓인 기록원들의 판단이 응축된 결과입니다. 만약 특정 기록원이 홈 팀 선수에게 유리하게 판정하는 '홈 버프(Home Buff)' 경향이 있다면, 그 선수의 통산 기록은 역사적 정당성을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3. 🧪 데이터의 보조와 인간의 통찰: 하이테크 시대의 기록원
최근 트랙맨(Trackman)과 호크아이(Hawk-Eye) 같은 첨단 기술이 기록원의 판단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 수치화된 수비 난이도: 이제는 타구의 속도와 수비수의 이동 거리, 포구 확률을 데이터로 뽑아낼 수 있습니다. "이 타구는 리그 유격수들의 85%가 처리하는 타구다"라는 객관적 지표가 기록원의 주관을 보완합니다.
- 최종 결정권자로서의 인간: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야구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불규칙 바운드의 원인이 불량한 그라운드 상태였는지, 아니면 수비수의 미숙한 핸들링이었는지는 센서가 아닌 기록원의 '현장감'이 결정합니다. 기록원은 숫자를 기록하는 기계가 아니라, 경기의 '역사적 서사'를 집필하는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 기록원 판단(안타 vs 실책)에 따른 이해관계자 영향도
| 구분 | 안타(Hit) 판정 시 | 실책(Error) 판정 시 | 비고 (기록적 가치) |
| 타자 (Batter) | 타율, 출루율, 장타율 상승 | 성적 변화 없음 (타석 수만 포함) | 안타 1개는 타율 약 0.001~0.003 좌우 |
| 투수 (Pitcher) | 실점 시 자책점(ERA 상승) | 실점 시 비자책점(ERA 유지) | 투수 연봉 협상의 핵심 지표 |
| 수비수 (Fielder) | 수비율 유지 (기록상 무결점) | 실책 기록 (수비율 하락) | 골든글러브 등 수비상 평가 근거 |
| 구단 (Club) | 공격 지표 상승, 마케팅 활용 | 수비 지표 하락, 선수 관리 자료 | 팀 전체의 수비 효율성(DER) 평가 |
🏁 야구의 품격은 기록의 정직함에서 나온다
공식 기록원은 야구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짓는 '벽돌공'과 같습니다. 그들이 쌓아 올린 기록 하나하나가 모여 야구의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됩니다. 주관성과 모호성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기록원이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특정 팀의 팬이 아닌 '야구 역사'의 수호자로서 중립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이제 야구 중계 화면 아래쪽에 흐르는 기록 자막을 보실 때, 그 숫자가 확정되기까지 기록원이 고뇌했던 '평범함의 기준'을 떠올려 보십시오. 야구는 기록원의 펜 끝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기록의 예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