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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칼럼] 고독한 마운드의 끝판왕, '완투'와 '완봉'이 그리는 투수의 위대함

by siestaplan 2025. 11. 9.

[에디터의 한마디] 현대 야구는 철저한 분업화의 시대입니다. 선발 투수가 6이닝만 잘 던져도 제 몫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고, 그 뒤를 이어 대여섯 명의 구원 투수가 마운드를 이어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 흐름 속에서도 팬들의 심장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경기 시작 때 마운드에 올랐던 선발 투수가 9회 마지막 아웃 카운트까지 자신의 손으로 잡아내는 순간입니다. 오늘은 투수에게는 최고의 훈장이자 팬들에게는 경외심의 대상인 완투와 완봉, 그 기록 이면에 담긴 묵직한 가치를 짚어보려 합니다.


흑백과 채색이 혼합된 그래픽 효과로 표현된 야구 투수가 투구 동작 중 다리를 들어 올리고 공을 던지기 직전의 역동적인 모습

 

1. 책임감의 결정체, 완투(Complete Game)라는 이름의 무게

 

야구 중계에서 선발 투수가 교체 없이 경기를 끝까지 책임졌을 때 우리는 이를 완투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투수가 승리했는지 혹은 패배했는지와 상관없이, 경기 시작부터 종료 시점까지 마운드를 홀로 지켰다는 사실 그 자체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규정 이닝인 9이닝을 모두 소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연장전까지 넘어가 10이닝 이상을 던지기도 하고, 때로는 갑작스러운 우천으로 경기가 단축되어 5이닝이나 6이닝만으로 완투가 성립되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완투의 진정한 가치는 투수의 내구성과 책임감에 있습니다. 경기 중반 위기가 찾아오고 투구 수가 100개에 육박하면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기 마련입니다. 이때 감독은 불펜 투수를 준비시키며 교체 타이밍을 고민하지만, 완투를 써 내려가는 투수는 "이 경기는 내가 끝내겠다"라는 강한 의지를 공 하나하나에 담아냅니다. 비록 실점을 하더라도 끝까지 마운드를 내려오지 않고 버티는 모습은 팀 동료들에게는 신뢰를,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2. 무결점의 지배력, 완봉(Shutout)이 선사하는 전율

완투가 투수의 책임감을 상징한다면, 완봉은 그 투수가 그날 하루만큼은 마운드 위의 지배자였음을 증명하는 무결점의 기록입니다. 완봉은 완투를 전제로 하되, 상대 팀에게 단 1점도 내주지 않아야 한다는 가혹한 조건이 붙습니다. 자책점뿐만 아니라 수비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점조차 허용해서는 안 되는, 말 그대로 전광판의 상대 팀 점수란을 9회 내내 '0'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완봉승을 지켜보는 팬들의 마음은 중반 이후부터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입니다. 1대 0 혹은 2대 0의 살얼음판 승부에서 투수가 완봉을 눈앞에 두었을 때, 경기장에는 묘한 정적이 흐르기까지 합니다. 안타 하나, 볼넷 하나에도 기록이 깨질 수 있다는 압박감 속에서 투수는 자신의 모든 구종을 동원해 상대 타자를 압도해야 합니다. 완봉승은 단순한 승리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상대 팀의 전략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키고, 자신의 구위가 리그 최고 수준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3.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현대 야구에서의 희소 가치

과거 야구에서는 한 시즌에 수십 번의 완투를 기록하는 철완 투수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투수의 어깨를 보호하기 위한 투구 수 제한 정책이 정착되고, 전문적인 마무리 투수들이 등장하면서 이제 완투와 완봉은 리그 전체를 통틀어 1년에 몇 번 보기 힘든 희귀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6이닝 3실점 정도의 '퀄리티 스타트'가 선발 투수의 미덕이 된 지금, 9이닝을 홀로 책임지는 행위는 일종의 '낭만'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봐도 완투와 완봉의 가치는 어마어마합니다. 한 명의 투수가 경기를 끝내주면, 지쳐 있던 불펜 투수 전원에게 꿀맛 같은 휴식을 줄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오늘 한 경기를 이기는 것을 넘어, 내일과 모레 경기의 승률까지 높이는 연쇄적인 긍정 효과를 불러옵니다. 투수 본인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지표가 되고, 팀에게는 전력을 재정비할 소중한 시간을 벌어주는 효자 노릇을 하는 셈입니다.

 

🏁  투수의 고독이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기록

완투승과 완봉승은 결국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겪는 고독의 크기에 비례하는 기록입니다.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홀로 공을 던지며 27개의 아웃 카운트를 채워나가는 과정은 흡사 수행자와 같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이제 중계를 보시다가 8회쯤 투수가 여전히 마운드에 서 있다면, 그가 완투를 향해 가는 것인지 아니면 완봉이라는 완벽함을 꿈꾸고 있는지 유심히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록의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여러분은 전광판의 숫자가 아닌 투수의 숨소리와 손끝의 변화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낭만이 사라져가는 현대 야구에서 끝까지 마운드를 지키는 투수의 뒷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투수의 실력을 평가하는 또 다른 정교한 지표인 타점(RBI)과 자책점(ER)의 복잡한 계산법을 통해, 기록지가 보여주는 야구의 이면을 더욱 자세히 파헤쳐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