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한마디] 어떤 시즌에는 홈런이 비가 오듯 쏟아지고, 또 어떤 시즌에는 외야 펜스 앞에서 허무하게 잡히는 타구가 속출합니다. 팬들은 이를 선수의 기량 변화로 해석하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계산된 정교한 과학적 규제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야구공과 배트의 '반발력'입니다. 야구 장비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경기의 득점 환경과 선수의 생명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오늘은 타구의 비거리를 결정하는 물리학적 지표인 반발 계수와 이를 둘러싼 리그의 전략적 선택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0과 1 사이의 물리학: 반발 계수(COR)의 정의와 원리
야구에서 반발력이란 공이 배트에 충돌했을 때 에너지를 얼마나 손실하지 않고 튕겨 나가는지를 수치화한 것입니다. 이를 과학적으로는 '반발 계수(Coefficient of Restitution, COR)'라고 부릅니다. 반발 계수는 물체가 충돌하기 전의 속도와 충돌한 후 튀어나가는 속도의 비율을 나타내며, 다음과 같은 수식으로 정의됩니다.
이 수치가 1에 가깝다면 에너지가 전혀 손실되지 않는 '완전 탄성 충돌'을 의미하여 공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게 되고, 0에 가깝다면 에너지가 배트에 흡수되어 공이 멀리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야구공의 경우 내부 코어의 탄성, 가죽의 재질, 그리고 공을 감싸는 실밥의 높이와 간격에 따라 이 수치가 미세하게 변합니다. 실밥이 낮으면 공기의 저항을 덜 받아 비거리가 늘어나고, 반발 계수가 높으면 타구 속도가 빨라져 담장을 넘길 확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이처럼 0.01 단위의 미세한 수치 조정이 야구장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2. 리그의 질서를 잡는 기준: 공인구 규정과 BBCOR의 역할
각국 프로 야구 리그는 경기의 공정성을 위해 공인구의 반발 계수를 엄격하게 제한합니다. KBO 리그의 경우 보통 0.4034에서 0.4234 사이의 매우 좁은 구간을 합격 기준으로 삼습니다. 실제로 2019년 KBO는 극심한 '타고투저(타자가 투수보다 압도적인 현상)'를 해결하기 위해 반발 계수를 소폭 낮추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리그 전체 홈런 수가 전년 대비 약 40% 가까이 급감하며 경기의 양상이 투수전 중심으로 급변한 것입니다. 이는 장비의 물리적 특성이 선수 개개인의 실력만큼이나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입니다.
한편,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성능보다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고교나 대학 야구에서 사용하는 알루미늄 배트는 반발력이 너무 좋아 타구 속도가 지나치게 빠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운드와의 거리가 가까운 투수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위험이 큽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규정이 BBCOR(Batted Ball Coefficient of Restitution)입니다. BBCOR은 금속 배트의 반발력을 전통적인 나무 배트 수준으로 강제하는 규정입니다. 배트가 공과 닿는 순간 에너지를 일부 흡수하도록 설계하여, 타구 속도를 안전한 범위 내로 통제하고 경기력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합니다.
3. 장비의 변화가 바꾸는 야구의 전술과 가치
반발력의 변화는 단순히 비거리의 문제를 넘어 팀의 운영 철학까지 바꿔 놓습니다. 고반발 공인구가 사용되는 시즌에는 정교한 작전보다는 장타 한 방으로 경기를 뒤집는 '빅볼(Big Ball)' 야구가 득세합니다. 타자들은 더 큰 스윙을 가져가며 홈런 생산에 집중하고, 구단들은 장타력이 좋은 거포들에게 높은 몸값을 지불합니다.
반대로 저반발 공인구가 도입되면 야구는 더욱 세밀해집니다. 홈런이 나오기 힘든 환경에서는 한 점을 짜내는 번트, 도루, 히트앤드런과 같은 기동력 중심의 전술이 중요해집니다. 투수들 역시 장타를 두려워하기보다 공격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며 탈삼진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투구 패턴을 바꿉니다. 결국 반발력 규정은 리그가 지향하는 야구의 색깔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설계도와 같습니다. 팬들은 이러한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특정 시즌의 기록이 선수의 절대적인 기량 때문인지, 혹은 장비 환경의 변화에 따른 결과인지를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심미안을 갖게 됩니다.
🏁 과학 위에 세워진 다이아몬드의 승부
야구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인 동시에, 정교하게 계산된 도구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과학의 장입니다. 배트와 공의 반발력은 그라운드 위에서 벌어지는 힘과 힘의 대결을 조율하는 가장 공정한 규칙입니다. 공 하나에 담긴 탄성의 수치를 지키려는 리그의 노력과, 그 제약 속에서 최고의 타구를 만들어내려는 선수들의 사투는 야구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듭니다.
이제 중계 방송에서 "작년보다 타구가 뻗지 않는다"거나 "공인구 반발력 검사 결과"라는 소식이 들린다면, 그것이 단순한 뉴스가 아닌 경기 전체의 흐름을 바꿀 거대한 변화의 시작임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과학적인 데이터를 통해 경기를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야구의 진정한 깊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반발력을 뚫고 타자를 압도하기 위해 투수들이 연마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구속(Velocity)'과 최근 야구계의 화두인 '회전수(Spin Rate)'의 비밀에 대해 자세히 파헤쳐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