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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칼럼] 야구의 모든 가치를 한 줄로 세우다, WAR의 마법과 숫자의 함정

by siestaplan 2025. 11. 17.

[에디터의 한마디] "이 선수의 가치는 몇 점인가요?" 과거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타율, 홈런, 타점 등 수많은 숫자를 나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3할 타자와 30홈런 타자 중 누가 더 팀 승리에 공헌했는지를 가려내기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WAR(Wins Above Replacement)입니다. 타격, 주루, 수비, 그리고 포지션의 희소성까지 단 하나의 숫자로 통합한 이 지표는 현대 야구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늘은 데이터 야구의 결정체인 WAR의 계산 원리와 그 속에 숨겨진 논쟁적인 한계들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1. 가치의 통합: WAR이 정의하는 '대체 선수'와 승리의 무게

WAR의 가장 혁신적인 점은 비교의 기준을 '리그 평균'이 아닌 '대체 선수(Replacement Level)'로 잡았다는 것입니다. 대체 선수란 주전 선수의 부상 시 퓨처스리그나 자유계약 시장에서 큰 비용 없이 즉시 수혈할 수 있는 수준의 선수를 의미합니다. WAR은 이들보다 한 선수가 팀에 몇 번의 승리를 더 가져다주었는지를 측정합니다.

 

WAR의 수치는 직관적입니다. 보통 2.0 WAR은 준수한 주전급 선수를, 5.0 WAR 이상은 리그를 대표하는 올스타급 활약을 의미하며, 8.0을 넘어서면 역사적인 MVP 시즌으로 평가받습니다. 타자의 경우, 단순히 안타를 많이 치는 것뿐만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진루했는지(주루), 어려운 타구를 얼마나 잡아냈는지(수비), 그리고 유격수나 포수처럼 수비 부담이 큰 포지션을 맡고 있는지(포지션 보정)가 모두 합산됩니다. 이처럼 WAR은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들을 하나의 저울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표준화된 잣대를 제공했습니다.

 

2. 객관적 지표의 힘: 연봉 협상부터 명예의 전당까지

WAR의 등장은 구단 운영과 선수 평가의 패러다임을 효율성 중심으로 재편했습니다. 구단 프런트는 이제 선수의 명성이나 단편적인 성적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WAR 1.0의 가치를 시장 가격(현재 메이저리그 기준 약 800만~1,000만 달러)으로 환산하여 선수의 적정 연봉을 산출하고, 트레이드의 손익을 계산합니다. 이는 자본이 부족한 스몰마켓 팀들이 저평가된 선수를 찾아내 강팀과 경쟁할 수 있는 전략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한, WAR은 선수의 커리어를 평가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시즌별 WAR을 누적한 수치는 해당 선수가 통산 얼마나 꾸준하게 팀에 기여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훗날 은퇴한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자격이 있는지를 논할 때, 과거의 주관적인 인상비평을 대신하는 가장 신뢰도 높은 객관적 데이터로 활용됩니다. 결국 WAR은 야구라는 복잡한 스포츠를 '승리'라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수렴시킨 가장 논리적인 결과물인 셈입니다.

 

3. 숫자의 맹점: 수비 측정의 불안정성과 사라진 인간미

하지만 WAR이 완벽한 지표는 아닙니다. 가장 큰 비판은 수비 가치를 산출하는 지표들의 불안정성에서 나옵니다. 타격과 달리 수비는 타구의 속도, 방향, 수비수의 위치 등 변수가 너무 많아 측정 도구마다 결과가 상이한 경우가 잦습니다. 실제로 제공 기관에 따라 동일 선수의 WAR이 1점 이상 차이 나는 현상은 흔하며, 이는 지표의 절대적인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더욱 중요한 한계는 WAR이 '측정 불가능한 가치'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경기의 승부처에서 발휘되는 '클러치 능력'이나 팀의 사기를 북돋우는 '리더십', 그리고 클럽하우스 내의 '케미스트리'는 WAR 계산기에 입력되지 않습니다. 가을 야구와 같은 단기전에서의 압도적인 존재감 역시 정규 시즌의 누적 수치인 WAR에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숫자가 야구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할 때, 우리는 때때로 야구가 사람이 하는 스포츠라는 본질적인 낭만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 WAR은 정답지가 아닌 안내서입니다

WAR은 현대 야구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렌즈이지만, 그것이 야구의 모든 진실을 담은 성경은 아닙니다. 높은 WAR은 그 선수가 시스템 안에서 효율적으로 기여했음을 증명하지만, 낮은 WAR이 그 선수의 투지와 헌신이 무가치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선수의 성적표에서 WAR 수치를 확인하실 때, 단순히 숫자의 크기에만 집중하기보다 그 숫자가 어떤 요소들(타격, 수비, 주루 등)로 채워졌는지를 함께 살펴보세요. 숫자가 말해주는 효율성과 눈으로 확인하는 선수의 열정을 결합할 때, 비로소 데이터 야구의 진정한 깊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WAR은 야구 분석의 종착역이 아니라, 선수의 숨겨진 가치를 탐구하기 위한 흥미로운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