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한마디] "박찬호의 '이단 옆차기' 투구 폼이나 이치로의 '진검 승부' 타격 준비 자세를 그대로 베껴서 게임을 만들면 불법일까?" 과거에는 그저 개성 있는 동작으로 치부되던 스포츠 선수들의 독특한 폼이 이제는 막대한 자본이 오가는 '지식재산권(IP)'의 영역으로 들어왔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가상 세계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선수의 신체 움직임 자체가 가지는 권리에 대한 법적·철학적 논쟁이 뜨겁습니다. 다이아몬드 위에서 펼쳐지는 동작의 주인은 누구인지 심층 해부합니다.

1. 스포츠 동작과 저작권법: '표현'인가 '방법'인가?
저작권법의 대원칙 중 하나는 '아이디어와 표현의 구별'입니다.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독창적으로 '표현'한 저작물에 부여되며, 단순한 기능적 '방법'이나 '규칙'에는 부여되지 않습니다.
이 원칙을 야구에 대입하면 논의가 복잡해집니다. 투수가 공을 더 빠르게 던지기 위해 연마한 특정 투구 폼은 승리를 위한 '기능적 방법'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만약 특정 투구 폼에 저작권을 인정해 버리면, 그 폼이 가장 효율적일 경우 다른 투수들은 저작권료를 내지 않고는 공을 던질 수 없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법체계에서는 스포츠 동작 그 자체를 저작물로 인정하는 데 매우 보수적입니다. 하지만 동작이 예술적 경지에 이르거나 경기와 무관한 독창적 퍼포먼스 요소가 강해질 때, 그 경계선은 다시금 모호해집니다.
2.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 이름과 얼굴을 넘어 '동작'으로
저작권이 동작의 '창작성'에 집중한다면, '퍼블리시티권'은 그 동작이 가진 '경제적 가치'에 집중합니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자신의 성명, 초상, 그리고 그를 연상시키는 고유한 특징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말합니다.
현대 야구 팬들은 선수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실루엣(동작)만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아맞힙니다. 예를 들어, 전설적인 타자들의 특이한 타격 준비 자세나 투수의 역동적인 릴리스 포인트는 그 선수의 '브랜드' 그 자체입니다. 야구 게임 제작사가 선수의 허락 없이 그 동작을 정교하게 모션 캡처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면, 이는 선수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퍼블리시티권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큽니다. 실제로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의 문신이나 독특한 세리머니 동작을 게임 내에서 구현했다가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들은 이 권리가 얼마나 강력해지고 있는지를 방증합니다.
3. 디지털 트윈과 모션 캡처: 기술이 부추긴 권리 분쟁
최근 생성형 AI와 초정밀 모션 캡처 기술의 발전은 이 논쟁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제 선수가 직접 촬영에 응하지 않아도, 과거의 경기 영상 데이터만으로 해당 선수의 모든 동작을 0.1도 단위까지 가상 세계에 완벽히 복제(Digital Twin)할 수 있습니다.
이때 발생하는 쟁점은 '데이터의 소유권'입니다. 경기 중 발생한 영상은 중계권자의 소유이고, 경기 데이터는 리그의 소유이지만, 그 데이터의 원천인 '신체 움직임'은 선수의 소유입니다. 만약 리그가 선수의 동작 데이터를 AI 학습용으로 판매한다면, 선수는 자신의 움직임에 대한 지분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이는 단순한 법적 다툼을 넘어, 인간의 신체 활동이 데이터화되는 시대에 개인이 자신의 신체 데이터에 대해 가지는 권리 범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4. '퍼포먼스 보호'와 '종목 발전' 사이의 줄타기
동작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측은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이 담긴 '창의적 결과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반대 측은 스포츠가 '공공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동작의 독점을 인정하면 후배 선수들의 학습권과 스포츠의 자유로운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실제로 야구 역사는 앞선 선수들의 폼을 모방하고 수정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만약 노모 히데오의 '토네이도 투구'나 이치로의 '시계추 타법'에 특허권과 같은 강력한 독점이 부여되었다면, 야구의 기술적 진보는 멈췄을지도 모릅니다. 법원은 이러한 '공익적 가치'와 선수의 '사익 보호'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 스포츠 동작 권리에 관한 법적 쟁점 비교
| 구분 | 저작권 (Copyright) | 퍼블리시티권 (Publicity) | 기술적 데이터권 (AI/Data) |
| 보호 대상 | 독창적 표현 (안무, 퍼포먼스) | 선수를 연상시키는 특징 (동작, 실루엣) | 신체 움직임의 수치 데이터 |
| 주요 쟁점 | 동작이 '창작적 저작물'인가? | 상업적 이용 시 경제적 가치 침해인가? | 데이터 소유권과 학습 권한은 누구에게? |
| 야구 예시 | 경기와 무관한 독특한 세리머니 | 타석에서의 고유한 준비 자세 | 투구 폼의 모션 캡처 데이터 |
| 한계점 | 기능적 동작은 보호받기 어려움 | 표현의 자유 및 공익과 충돌 가능성 | 법적 가이드라인이 아직 미비함 |
🏁 다이아몬드 위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권리의 시대
야구는 이제 단순한 공놀이를 넘어, 거대한 '지식재산권의 집합체'가 되었습니다. 선수의 투구 폼 하나, 타격 동작 하나는 수많은 데이터로 치환되어 가상 세계를 떠돌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합니다.
"나의 타격 폼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점차 "선수 개인의 신체 권리이면서 동시에 디지털 시대의 공유 자산"이라는 복합적인 결론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비즈니스의 미래는 이 복잡한 권리 관계를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음 경기에서 여러분이 응원하는 선수가 멋진 홈런을 치고 독특한 세리머니를 한다면, 그 움직임 속에 담긴 보이지 않는 권리의 가치도 함께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야구의 감동은 이제 근육의 떨림을 넘어 법적 문서와 데이터의 그리드 위에서도 흐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