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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칼럼] WAR의 몰락? '스탯캐스트 2.0'이 재정의하는 선수의 가치

by siestaplan 2025. 12. 28.

[에디터의 한마디] 한때 세이버메트릭스의 꽃이자 연봉 협상의 절대 기준이었던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하지만 데이터 야구의 최전선은 이제 '결과'가 아닌 '물리적 과정' 그 자체를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의 속도, 수비수의 첫 발자국 반응 시간 등 찰나의 물리량이 선수의 수백억 원 몸값을 결정하는 시대. '스탯캐스트(Statcast) 2.0'이 가져온 야구 통계의 혁명을 심층 분석합니다.


야구글러브에 야구공이 담겨있는 이미지


1. 운(Luck)을 제거한 데이터의 정수: xBA와 정타율

과거의 야구 통계는 '결과론'에 기반했습니다. 빗맞은 타구가 수비수 사이에 떨어지면 안타로 기록되어 타율을 높였고, 잘 맞은 총알 같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면 아웃으로 처리되어 타자의 능력을 깎아내렸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xBA(Expected Batting Average, 기대 타율)는 결과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타구의 '출구 속도(Exit Velocity)'와 '발사각(Launch Angle)'만을 따집니다. 170km/h의 속도로 25도의 각도로 날아간 타구는 결과가 아웃일지라도 "이것은 9할의 확률로 안타가 되는 고품질 타격"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러한 데이터는 선수가 운이 나빠 슬럼프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기량이 하락한 것인지를 정확히 판별해 줍니다. 구단은 이제 '운이 좋았던 3할 타자'보다 '운이 없었지만 정타를 만들어내는 2할 8푼 타자'에게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합니다.

2. 수비 평가의 혁명: 'Outs Above Average(OAA)'

실책(Error)이라는 지표는 야구 역사상 가장 불완전한 데이터 중 하나였습니다. 수비 범위가 넓어 남들이 못 잡는 공을 건드려 실책을 범한 선수보다, 수비 범위가 좁아 아예 공 근처에도 못 간 선수가 기록상 '깨끗한 수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스탯캐스트는 이를 OAA(평균 대비 아웃 기여)라는 지표로 해결했습니다. 수비수가 공이 뜨는 순간 얼마나 효율적인 경로로 이동했는지, 낙구 지점까지의 거리와 공중 체류 시간을 계산하여 "이 공을 잡을 확률은 10%였다"는 난이도를 산출합니다. 그 어려운 공을 잡아내면 선수의 가치는 폭등합니다. 이제 수비는 '실수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상 불가능해 보이는 안타를 지워버리는 능력'으로 평가받습니다.

3. 투구 디자인의 정점: 회전 효율과 무브먼트

투수의 가치 평가 역시 구속(Velocity)에서 '구질의 설계(Pitch Design)'로 이동했습니다. 단순히 155km/h를 던지는 것보다, 그 공이 얼마나 수직으로 덜 떨어지는지(Magnus Effect), 혹은 타자 앞에서 얼마나 지저분하게 휘는지를 cm 단위로 측정합니다.

특히 '회전 효율(Spin Efficiency)'은 현대 투수 가치 평가의 핵심입니다. 같은 2,500 RPM이라도 실밥의 각도가 공기 저항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타자가 느끼는 체감 구속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구단은 이제 트랙맨(Trackman) 데이터를 보고 투수의 투구 메커니즘을 3D로 재구성하여, 선수가 가진 잠재력을 1%까지 쥐어짜 내는 전략을 취합니다.

📊 지표의 진화: 고전 통계 vs 현대 데이터

평가 영역 과거의 지표 (Classic) 현대의 지표 (Statcast 2.0) 변화의 핵심 가치
타격 능력 타율(AVG), 타점(RBI) xBA, 정타율(Hard Hit %) 운의 제거 및 타격 품질 측정
선구안/생산성 볼넷, 삼진 개수 스윙 결정율, 추격율(Chase %) 나쁜 공에 속지 않는 뇌의 통제력
수비 기여 실책(E), 수비율(FPCT) OAA, 점프(Jump), 캐치 확률 수비 범위와 신체 반응 속도 측정
투구 가치 승(W), 평균자책점(ERA) Stuff+, 수직 무브먼트, 회전 효율 타자를 압도하는 물리적 힘의 분석

🏁 숫자가 만든 '야구의 투명성'

데이터의 진화는 야구라는 게임의 불확실성을 '예측 가능한 확률'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선수의 가치는 단순히 시즌이 끝난 뒤의 누적 기록이 아니라, 매 타석과 매 투구에서 보여준 '물리적 퍼포먼스의 농도'로 결정됩니다.

우리가 데이터 야구를 즐겨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숫자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선수의 숨은 헌신과 재능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주기 때문입니다. 다음 야구 중계를 볼 때 중계 화면 구석에 뜨는 '타구 속도'와 '발사각'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거기에는 선수의 수백억 원 몸값이 결정되는 가장 냉혹하고도 정교한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