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한마디] 야구에서 타자의 안타는 전광판에 즉시 기록되고, 투수의 삼진은 환호와 함께 숫자로 남습니다. 하지만 수비수의 가치는 어떨까요? 과거에는 실책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최고의 수비로 통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수비 범위가 좁아 아예 공 근처에도 가지 못한 선수는 실책을 저지를 기회조차 없기에 기록상 '클린'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야구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UZR과 DRS라는 혁신적인 도구를 도입했습니다. 오늘은 수비수의 발자국과 글러브 끝에 담긴 가치를 숫자로 환산하는 수비 지표의 세계를 살펴보겠습니다.

1. 수비 범위의 기하학: UZR(Ultimate Zone Rating)의 과학적 접근
UZR은 수비수가 자신이 맡은 구역에서 평균적인 수비수보다 얼마나 더 많은 실점을 막아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이 지표의 핵심은 야구장 필드를 수백 개의 세밀한 구역으로 나누는 데 있습니다. 통계학자들은 각 구역으로 날아온 타구의 속도, 각도, 궤적을 분석하여 리그 평균적인 수비수가 해당 타구를 처리할 확률을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유격수 깊숙한 곳으로 날아간 타구의 처리 확률이 10%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유격수가 놓치는 이 공을 누군가 잡아내 아웃으로 만든다면, 그 선수는 평균 대비 0.9점의 이득을 팀에 안겨준 것으로 계산됩니다. 반대로 누구나 잡을 수 있는 90% 확률의 공을 놓친다면 큰 감점을 받게 됩니다. UZR은 이처럼 '얼마나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가'를 실점 억제력이라는 점수로 환산합니다. 보통 +10점을 기록하면 골드글러브급 수비수로 평가받으며, 이는 수비 범위가 넓은 유격수나 중견수를 평가할 때 가장 신뢰받는 지표가 됩니다.
2. 수비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다: DRS(Defensive Runs Saved)의 종합 예술
UZR이 주로 '타구를 잡아내는 범위'에 집중한다면, DRS는 수비수가 경기 중에 행하는 모든 움직임을 점수화하는 보다 포괄적인 지표입니다. DRS는 말 그대로 '수비로 막아낸 점수'를 의미하며, 타구 처리뿐만 아니라 포수의 도루 저지, 내야수의 병살타 완성 능력, 외야수의 강력하고 정확한 송구까지 모두 평가 범위에 포함합니다.
DRS의 강력함은 입체적인 평가에 있습니다. 외야수가 안타를 허용했더라도 빠른 송구로 2루로 뛰던 주자를 잡아냈다면, DRS는 이를 실점을 막은 훌륭한 플레이로 기록합니다. 또한 내야수가 어려운 타구를 잡아낸 뒤 정확하게 1루로 던져 병살을 만들어내는 과정 하나하나에 가중치를 부여합니다. 결과적으로 DRS가 +15 이상인 선수는 해당 포지션에서 리그 전체를 지배하는 수비 명장으로 인정받습니다. 실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선수의 판단력과 어깨, 그리고 순발력이 팀의 실점을 얼마나 억제했는지를 보여주는 종합 성적표인 셈입니다.
3. 지표의 차이가 암시하는 수비의 전략적 가치
UZR과 DRS는 측정 방식에서 미세한 차이를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바로 '수비는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발이 느려 수비 범위가 좁은 선수가 단순히 실책이 적다는 이유로 고평가받는 일이 잦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세이버메트릭스는 넓은 범위를 뛰어다니며 어려운 타구에 도전하는 공격적인 수비수들에게 정당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구단들은 트레이드나 FA 시장에서 선수를 영입할 때 이 지표들을 금언처럼 활용합니다. 타율은 낮더라도 DRS와 UZR이 압도적인 선수는, 그가 막아내는 실점의 가치가 웬만한 강타자의 홈런 몇 개보다 팀 승리에 더 크게 기여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팬들 역시 이제는 실책 하나에 비난하기보다, 저 선수가 얼마나 넓은 구역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UZR 숫자를 통해 확인하며 수비의 미학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수비는 이제 단순히 공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실점을 억제하기 위한 능동적인 사냥의 과정으로 재정의되었습니다.
🏁 숫자로 증명된 '수비는 승리의 절반'
"공격은 관중을 부르고, 수비는 승리를 부른다"는 야구계의 오래된 격언은 UZR과 DRS라는 숫자를 통해 과학적 사실로 증명되었습니다. 화려한 호수비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수천 번의 풋워크와 타구 판단이 숨어 있으며, 그 노력의 결실은 실점 억제라는 구체적인 수치로 기록됩니다.
이제 경기를 보실 때 선수가 실책을 저질렀는지에만 매몰되지 마세요. 그 선수가 평소 얼마나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지, 그리고 그라운드 위에서 얼마나 많은 실점의 위기를 지워내고 있는지를 UZR과 DRS를 통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숫자가 들려주는 수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야구장의 9개 포지션 모두가 주인공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투수의 실력을 가늠하는 가장 순수한 척도이자, 구위의 상징인 '탈삼진율(K/9)'과 제구의 상징인 '볼넷 비율(BB/9)'의 상관관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