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에디터 칼럼] 투수의 민낯을 드러내는 두 숫자, K/9와 BB/9가 말하는 마운드의 진실

by siestaplan 2025. 11. 10.

[에디터의 한마디] 야구 중계 화면에 표시되는 ERA(평균자책점)는 투수의 성적표 중 가장 화려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ERA는 낮지만 왠지 불안해 보이는 투수, 혹은 ERA는 높은데 구위만큼은 압도적인 투수를 마주하게 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요? ERA는 수비수의 실력이나 구장의 크기, 심지어 행운이라는 요소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투수의 '진짜 실력'을 확인하고 싶다면, 우리는 수비라는 장막을 걷어내고 투수 본연의 통제권 안에 있는 지표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핵심이 바로 탈삼진율(K/9)과 볼넷 허용률(BB/9)입니다.


타석에 선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는 순간, 포수가 앉아 있고 야구공이 공중에 떠 있는 야외 야구장 경기 장면.

 

 

1. 지배력의 척도: K/9(9이닝당 탈삼진 비율)과 구위의 함수

K/9은 투수가 한 경기(9이닝)를 온전히 소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평균적으로 몇 개의 삼진을 잡아내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삼진은 야구 수비에서 유일하게 '야수들의 도움 없이' 투수가 스스로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K/9 수치가 높다는 것은 타자가 공에 배트를 맞히는 것조차 어렵게 만드는 압도적인 구위(Stuff)를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K/9 = 탈삼진 수 / 투구 이닝 수 * 9
 
 

일반적으로 K/9이 9.0을 넘어서면 이닝당 평균 한 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훌륭한 투수로 평가받으며, 10.0을 상회하면 리그를 지배하는 '닥터 K'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봅니다. 삼진은 인플레이 타구를 원천 차단하기 때문에, 주자가 3루에 있는 위기 상황에서 실점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가 됩니다. 결국 K/9은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얼마나 능동적으로 승부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2. 안정감의 토대: BB/9(9이닝당 볼넷 비율)과 제구의 미학

반대로 BB/9은 투수가 9이닝당 평균적으로 허용하는 볼넷의 개수를 의미합니다. 삼진이 투수의 '힘'을 상징한다면, 볼넷은 투수의 '제구력(Command)'과 심리적 '안정감'을 상징합니다. 볼넷은 타자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베이스를 내주는 행위로, 투구 수의 급격한 증가와 실점 위기를 자초하는 원인이 됩니다.

 

                                                      BB/9 = 볼넷 수 (고의 사구 제외) / 투구 이닝 수 * 9
 
 
 

뛰어난 제구력을 가진 투수들은 보통 2.5 이하의 BB/9을 유지하며, 1.5 수준에 도달하면 '컴퓨터 제구력'이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볼넷이 적은 투수는 야수들의 집중력을 유지시키고 경기의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며 팀 전체에 안정감을 줍니다. 아무리 구위가 좋아 삼진을 많이 잡아도 볼넷이 남발되는 투수는 결국 '시한폭탄'과 같은 위험을 안고 던지는 셈입니다. 따라서 BB/9은 투수가 스트라이크 존을 얼마나 정교하게 요리하며 경제적인 투구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신뢰의 지표입니다.

 

3. 구위와 제구의 황금비: K/BB가 증명하는 에이스의 품격

K/9과 BB/9이라는 두 숫자가 만나면 비로소 투수의 입체적인 초상화가 완성됩니다. 이 두 지표의 상관관계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K/BB(삼진/볼넷 비율)입니다. 이는 볼넷 하나를 내주는 동안 삼진을 몇 개 잡아냈는지를 측정하는 수치로, 투수의 효율성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K/BB = 탈삼진 수 / 볼넷 수
 
 
 

현대 야구에서 에이스로 불리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높은 K/9을 유지하면서도 낮은 BB/9을 기록하여 K/BB 비율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보통 선발 투수의 K/BB가 3.0 이상이면 준수하고, 5.0을 넘어서면 리그 최정상급 에이스로 대우받습니다. 이 비율이 높다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삼진으로 불을 끄는 능력과, 스스로 위기를 만들지 않는 안정감을 동시에 갖췄다는 뜻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핵심 지표인 FIP(수비 무관 자책점) 역시 이 K/9과 BB/9의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설계되었을 만큼, 이 두 숫자는 투수 평가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숫자가 들려주는 마운드 위의 고독한 사투

투수의 ERA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K/9이 낮고 BB/9이 높다면, 그 투수는 현재 수비의 도움이나 엄청난 행운에 의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ERA는 높지만 K/BB 비율이 훌륭하다면, 조만간 그의 성적은 본래의 실력에 맞게 개선될 것임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숫자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던진 공 하나하나의 가치를 공정하게 기록합니다.

 

이제 야구 중계를 볼 때, 화려한 탈삼진 장면에만 환호하기보다 그 투수가 오늘 몇 개의 볼넷을 내줬는지 함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K/9이라는 창과 BB/9이라는 방패가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야구라는 데이터 예술을 가장 깊이 있게 즐기는 방법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투수들의 구위를 무력화시키고 현대 야구의 득점 공식을 다시 쓰고 있는 전략적 변화, '클린업 트리오의 해체와 타순 최적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