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수년간 에너지 및 대규모 인프라 분야에서 프로젝트 개발을 담당하며, 착공에서 준공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불확실성과 싸워왔습니다. 거대한 자본과 타이트한 공기(Scheduling)가 맞물려 돌아가는 현장일수록, 리더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과나 가시적인 마일스톤(Milestone) 달성에 집착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노련한 리스크 매니저라면 알고 있습니다. 시장 환경의 급변, 글로벌 공급망 마비, 혹은 불가항력적인 규제 장벽 같은 '재앙적 수준의 위기(Worst Case Scenario)'가 몰아칠 때, 리더십의 최우선 순위는 화려한 승리가 아니라 조직과 프로젝트를 어떻게든 '생존'시키는 방어벽을 세우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극단적인 악재 속에서도 조직의 연속성을 지켜내고 Plan B를 실행하는 내면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쟁 실화 영화 <덩케르크(Dunkirk)>는 승리의 영웅담이 아닌, 오직 '살아남기 위한 철수' 그 자체를 위대한 서사로 이끌어낸 마스터피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 명의 연합군을 무사히 탈출시키기 위해 전개된 '다이너모 작전'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위대한 실존철학자 바루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가 정립한 '코나투스(Conatus)' 사상을 완벽하게 시각화한 작품입니다. 오늘은 이 영화를 통해 위기 상황에서 조직을 정렬(Alignment)시키고 리스크를 분담하는 PM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대해 논해보고자 합니다.

1.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 존재를 유지하려는 조직의 본질적인 생존 의지
바루흐 스피노자는 그의 명저 《에티카》를 통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신을 파괴하려는 외부의 억압에 저항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본질적인 성향과 힘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라틴어로 '코나투스(Conatus)'라고 부릅니다. 스피노자에게 코나투스는 단순한 생물학적 생존 본능을 넘어, 자신의 역량을 확장하고 삶을 가장 적극적으로 긍정하려는 '존재의 본질'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 속 덩케르크 해안은 연합군에게 가혹한 한계 제약(Constraint)의 공간입니다. 뒤편에서는 독일군의 전차가 압박해오고, 하늘에서는 전투기가 폭탄을 투하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해안에 줄을 서 있는 병사들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강렬한 코나투스가 요동칩니다. 영화는 이 병사들의 생존 의지를 추잡한 비겁함이 아니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정직한 로 데이터(Raw Data)로 그려냅니다.
대형 인프라 사업의 Joint Venture(JV)를 이끌거나 복잡한 하도급 구조를 관리할 때도 리더는 조직의 코나투스를 정밀하게 읽어내야 합니다. 프로젝트가 심각한 인허가 반려나 금융 주선 결렬 같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파트너사들과 실무자들은 본능적으로 리스크를 회피하고 자기 조직의 생존(코나투스)만을 도모하는 각자도생의 허무주의(베이글)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때 PM이 계약서 문구(리바이어던)만을 들이밀며 일방적인 책임과 처벌을 강제하면 조직의 코나투스는 꺾이고 위험의 은폐만을 양산하게 됩니다. 리더는 구성원들의 생존 의지를 상생의 비전으로 정렬(Alignment)시키는 통합적 조율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2. 맹목적인 공격보다 위대한 철수: 가짜 안정감(KPI)을 깨부수고 리스크를 헤징하는 결단
영화에 등장하는 육·해·공의 세 가지 시점(잔교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은 오직 '철수의 성공'이라는 단 하나의 마일스톤을 향해 유기적으로 결합됩니다. 맹목적으로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가짜 영웅주의를 배제하고, 40만 명의 군대라는 핵심 자산(Asset)을 보존하기 위해 과감하게 뒤로 물러서는 결단은, 리스크 매니지먼트 관점에서 완벽한 '선제적 리스크 헤징(Risk Hedging)'의 바이블입니다. 만약 여기서 무모한 전면전을 고집했다면 연합군의 미래 자산은 통째로 초토화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전사 거버넌스를 점검하거나 프로젝트 타당성(Due Diligence)을 검증할 때 가장 경계하는 것도 바로 이 '가짜 지표에 취한 무모한 돌격'입니다. 많은 조직이 본사 대시보드 화면의 매끄러운 수치나 성공 스토리(시뮬라크르)에 안주하며, 이미 현장의 공급망과 인프라 건전성에 심각한 품질 균열이 발생했음에도 공기 단축이라는 무리한 KPI를 달성하기 위해 하도급사(Sub-contractor)들을 밀어붙이곤 합니다.
그러나 노련한 리더는 숫자가 주는 가짜 안정감을 깨부수고 차가운 실재(Reality)를 직시합니다. 현재의 리스크 경로가 프로젝트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면, 잠시 공정을 멈추거나 사업 계획을 전면 수정(Plan B 실행)하는 단호한 용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리스크 자산을 정확히 분담(Risk-sharing)하고 후퇴할 줄 아는 문해력이 프로젝트를 진정으로 구원합니다.
3.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신뢰 자본(Social Capital)을 구축하는 소프트 거버넌스
영화의 결말부, 천신만고 끝에 민간 어선들의 도움(깐부 정신)을 받아 영국의 기차역에 도착한 젊은 병사 알렉스(해리 스타일스 분)는 시민들이 자신들을 패잔병이라 비난하고 돌을 던질까 봐 두려워하며 신문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하지만 기차 창문 너머로 시민들이 건넨 것은 비난이 아닌 따뜻한 맥주와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맙다"는 환대의 목소리였습니다. 처칠 총리의 연설문처럼 "이 철수는 승리가 아니지만, 이 생존을 통해 우리는 다시 싸울 역량을 얻었다"는 공동체의 위대한 격려였습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연대하는 '소프트 거버넌스(Soft Governance)'가 완성되는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힌 대형 사업 현장에서 리더가 마주해야 할 최후의 책무 역시 이러한 신뢰 자본(Social Capital)의 형성입니다.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돌아온 실무자들과 파트너사들에게 "왜 목표 수치를 달성하지 못했느냐"고 문책하는 차가운 규제 체제는 조직의 회복탄력성을 완전히 파괴합니다.
"비록 이번 인허가는 지연되었지만, 우리가 위험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유하며 최악의 사태를 막아냈으니, 이 축적된 경험 자산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성공을 설계하자"는 상생의 커뮤니케이션(Storytelling)이 필요합니다. 리더가 보여주는 정직한 신뢰는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 단단한 방어벽을 형성하며, 불확실성의 밀물 속에서도 프로젝트의 본질적인 가치를 지켜내는 최고의 공학적 솔루션이 됩니다.
결론: 불확실성의 사막 위에서 코나투스를 증명하는 리더십
<덩케르크>는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해안가 너머로 우리에게 묵직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조직은 지금 본사가 짜놓은 매끄러운 보고서 수치와 안전한 지표라는 '가짜 하늘' 밑에 안주하며 현장의 본질적인 위험 징후를 외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며 생태계 전체의 생존과 상생을 설계하고 있습니까?
대규모 청정에너지·산업 인프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문가로서 제가 내린 실존적 확신은 명확합니다. 완벽하게 리스크가 제로인 프로젝트 환경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현장은 언제나 돌발 변수에 의해 흔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정해진 숫자의 기만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의 날것 그대로의 실재를 독해(Due Diligence)하며, 위기 순간에 조직의 생존을 위해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는 PM의 단단한 회복탄력성과 책임감이야말로, 시스템의 기만에 종속되지 않고 거대한 사업을 최종 성공으로 안착시키는 유일한 마스터키일 것입니다.
[시네마 철학 사전]
- 바뤼흐 스피노자: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을 주장하며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긍정적으로 해석한 근대 철학자.
- 코나투스(Conatus): 사물이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노력 혹은 경향. 인간에게는 욕망이나 의지로 나타남.
- 필연성: 세상의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에 따라 일어나며, 인간은 이 원인을 이해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관점.
- 능동과 수동: 외부 원인에 의해 휘둘리면 수동, 내면의 이성과 본성에 따라 행동하면 능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