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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칼럼] 수백억 계약의 설계자, WAR: KBO FA 시장을 지배하는 숫자의 비밀

by siestaplan 2025. 11. 25.

[에디터의 한마디] 매년 겨울, KBO 리그는 뜨거운 '머니 게임'의 장이 됩니다.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계약 소식이 들려올 때면 팬들은 묻습니다. "과연 저 선수가 저만큼의 돈값을 할까?" 과거에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감'이나 '명성'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명확한 숫자 하나가 그 답을 대신합니다. 바로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입니다. 오늘은 단순한 성적표를 넘어 선수의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는 현대 야구의 핵심 지표, WAR이 어떻게 FA 시장의 연봉 협상을 설계하는지 그 내밀한 과정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1. WAR의 본질: '대체 불가능한 존재'를 수치화하다

WAR은 한 선수가 리그의 평균적인 대체 선수(Replacement Level, 보통 퓨처스리그에서 바로 올릴 수 있는 수준의 선수)에 비해 팀에 몇 승을 더 가져다주었는지를 나타내는 종합 지표입니다. 이 지표가 혁명적인 이유는 공격력뿐만 아니라 수비, 주루, 그리고 해당 포지션의 희소성(Position Adjustment)까지 모두 합산하여 '단 하나의 숫자'로 결론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타율은 낮지만 리그 최고의 유격수 수비를 보여주는 선수와, 수비는 약하지만 장타력이 뛰어난 지명타자의 가치를 평면적으로 비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WAR 시스템 안에서는 두 선수의 기여도가 '승리 기여도'라는 공통 분모로 환산됩니다. 구단들은 이제 "이 선수는 타율이 3할이다"라는 말 대신, "이 선수는 우리 팀에 4.5승을 더해줄 자산이다"라고 판단합니다. 승리가 곧 수익과 직결되는 프로 스포츠에서 WAR은 선수의 가치를 매기는 가장 합리적인 '가격표'가 된 셈입니다.

2. KBO FA 시장의 공식: 1 WAR의 가격은 얼마인가?

최근 3~4년 사이 KBO 리그 구단들의 데이터 분석실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구단은 내부적으로 '1 WAR당 단가' 모델을 구축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습니다. 메이저리그(MLB)의 경우 1 WAR의 가치를 약 800만 달러 내외로 평가한다면, KBO 리그는 시장 규모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여 보통 1 WAR당 3억 원에서 5억 원 사이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어떤 선수가 지난 3년간 평균 4.0의 WAR을 기록했다면, 구단은 이 선수가 향후 4년 계약 기간 동안 약 12~14 정도의 WAR을 합산해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여기에 단가 4억 원을 곱하면 약 50억 원 내외의 '적정가'가 산출됩니다. 물론 FA 시장의 특수성인 '매물 희소성'과 '구단 간 경쟁'이 붙으면 가격은 이보다 치솟기도 하지만, WAR은 협상의 기준점(Anchor) 역할을 하며 구단이 무분별한 과잉 투자를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안전장치가 됩니다.

3. '플루크'를 걸러내는 안정성의 미학: 지속 가능한 가치

WAR 중심 평가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선수의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단 한 시즌 엄청난 성적을 낸 이른바 '플루크(Fluke) 시즌'을 보낸 선수보다, 4~5년간 꾸준히 WAR 2.0 이상을 기록해 온 선수가 FA 시장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구단은 이제 "가장 높은 고점"이 아닌 "가장 높은 저점"을 가진 선수에게 거액을 투자합니다. WAR은 선수의 에이징 커브(Aging Curve) 분석과 결합하여, 4년 계약 기간 중 후반부에 선수의 기량이 얼마나 하락할지까지 정교하게 예측합니다. 이러한 데이터 기반의 판단은 구단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팬들에게는 특정 선수의 고액 계약이 왜 성사되었는지 혹은 왜 무산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객관적인 근거가 됩니다.

4. 투명해지는 시장과 팬들의 데이터 리터러시

WAR의 확산은 팬들의 야구 관전 문화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팬들은 단순히 홈런 숫자만 보고 열광하지 않습니다. "저 선수는 홈런은 많지만 수비 범위가 좁아 WAR이 낮네"라거나, "안타는 적어도 볼넷을 잘 골라 출루율이 높으니 WAR 효율이 좋네"라며 선수의 가치를 입체적으로 논의합니다.

이러한 데이터 리터러시(Data Literacy)의 향상은 FA 시장의 투명성을 높입니다. 구단이 납득하기 어려운 '거품 계약'을 맺을 경우 팬들은 WAR 수치를 근거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며, 반대로 적절한 투자를 했을 때는 비록 성적이 당장 나오지 않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주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WAR은 선수와 구단, 그리고 팬 사이를 잇는 '공용어'가 된 것입니다.

🏁 숫자가 그려내는 공정한 다이아몬드

KBO 리그의 FA 시장은 이제 '감'의 영역을 지나 '과학'의 영역으로 완전히 진입했습니다. WAR이라는 지표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선수의 땀방울과 헌신을 가장 공정하게 수치화하려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수백억 원의 계약서 뒤에는 그 선수가 경기장에서 만들어낸 수천 개의 데이터와 승리를 향한 기여도가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이제 다가오는 겨울, 좋아하는 선수의 계약 소식이 들려온다면 그 선수의 최근 3년간 WAR 합계를 찾아보세요. 그리고 구단이 제시한 금액과 그 숫자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야구는 다이아몬드 위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인 동시에, 숫자라는 부품으로 정교하게 돌아가는 거대한 경제 시스템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시장, 그 중심에는 언제나 냉철한 지표 WAR이 서 있을 것입니다.